
이미지 출처: Netflix 공식 트레일러 캡처 (https://www.netflix.com/title/80202877)
오랜만에 인도 영화를 봤다.
<화이트 타이거>.
제목만으로는 어떤 영화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지만, 보기 시작하자마자 빠져들었다.
영화는 인도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한 청년, 발람의 이야기다.
그는 카스트제도의 가장 아래, ‘닭장 속’에 갇힌 삶을 살아간다. 그와 그의 가족은 교육도, 기회도, 존엄도 없이 살아간다. 나는 처음에 발람이 그저 운이 좋은 청년인 줄 알았다. 지주의 아들, 야쇽의 운전기사가 되어 도시로 나가게 되었을 때만 해도 그는 참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착한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었다.
야쇽의 아내가 낸 교통사고를 발람이 대신 뒤집어써야 했고, 그 순간부터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던가. 발람은 충성을 다했지만, 세상은 그의 충성을 하찮게 여겼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발람과 야쇽이 함께 노래를 부르던 밤이었다. 하인과 주인이라는 신분을 잠시 잊은 채, 인간 대 인간으로 마음이 통했던 짧은 순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발람은 야쇽을 배신하기로 마음먹고 계획을 하나씩 실행하던 중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그 밤, 발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노래를 부르며 잠시나마 웃던 그 순간, 발람은 괴로웠을까?
혹시 마음 한켠에서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다시 하인으로 돌아가더라도 작은 희망 하나쯤 품고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닐까?
하지만 결국 발람이 선택한 것은, 그 따뜻한 순간을 뒤로한 채 더 높은 곳으로 향하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는 더 이상 누군가의 발밑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가 닭장 속에서 길들여진 닭이 아니라는 것을, 호랑이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야쇽을 인간적으로 좋아했지만, 동시에 그가 상징하는 모든 불합리함과 위선을 무너뜨리고 싶었을거다.
함께 노래 부르던 때 만큼은 둘 다 순수해 보였고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그 밤, 진심으로 웃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마음속에는 칼을 쥐고 있던 발람.
그 복잡한 감정을 보면서 나도 떠올렸다.
나 역시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나를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두거나 상처를 주기도 했던 순간들.
인간은 그렇게 모순적이라는 걸, 이 영화는 떠올리게 해줬다.
그 후 발람은 부자들 곁에서 보아온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결국 자신만의 사업을 일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살인을 저질렀지만 누구보다 인간적인 고용주가 되려 한다.
“나는 닭장에서 탈출했지만, 내 밑에 있는 이들은 닭장이 아니라 창문이 있는 방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
그의 이 태도는, 과거의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사과이자 위로같았다.
영화에는 델리의 고층 빌딩과 길바닥에서 살아가는 하층민들, 정치인들과 구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교차되며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같은 나라, 같은 시대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삶이 다를 수 있을까.
발람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는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세상에 맞서 싸웠다는 것이다.
그 싸움은 단지 돈이나 지위보다, ‘존엄’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그런 극닥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겠지만,
나 역시 삶이 나를 눌러올 때, 나를 지키기 위해 어떤 용기를 낼 수 있을까를 잠깐 고민해보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질문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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